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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퇴사의 시대 /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도련님 헌정곡

by 소소planet 2023. 12. 25.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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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신규직원들이 업무시간에 에어팟을 끼고 일하는 게 당연한 시대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사내 메신저를 켜 놓고 일하고, 대화도 메신저로 하고, 자료도 메신저로 하는 시대입니다.

업무지시도 비대면으로 받기를 원합니다.

회식자리에선 상사가 고기를 구워야 하는 시대라고 선배들은 불만을 토로합니다.

선배로서 말이라고 하면 어느새 꼰대가 되어 있다고 합니다.

회사에는 X세대, MZ세대, 알파세대 등 다양한 세대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일명 오피스 빅뱅이라고 하는데, 선배들은 점점 적응이 힘겨워진다고 합니다.

 

연말이 되면서 회사를 떠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도 떠나갔습니다.

딸랑 한장의 편지만 남겨 놓은 채 떠나갔습니다. 그는 인사 정도는 나누던 사이였는데 말입니다.

 

정든 직장을 떠납니다.

1986년 경기도에  '잠시' 집안 형님을 뵈러 왔다가  '지금까지' 살고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 본 이 도시는 허허벌판에 사방이 논과 밭이었고, 듬성듬성 허름한 집들과 고깃배들이 드나드는 포구는 전형적인 어촌마을이었습니다

 

어느덧 38년!

이 도시가 변하듯 나의 삶도 참 많이 변했습니다.

도시 인구가 늘어나고, 도시가 번창하듯 혈혈단신이었던 나도

아이 셋의 아버지가 되었고, 겉모습도 변하여 수북하던 머리숱과 팽팽하던 피부는 옛 앨범에서나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게는 '세월'이 오지 않을거라는, '늙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살았습니다.

 

입사로 시작했던 '나'와

퇴사로 마침표를 찍는 '나'는 너무나 달라 보입니다.

무서울 게 없던 젊은이로 왔다가

나약한 늙은이로 홀로 서는 느낌입니다.

 

최근 이런저런 모임에서 마련해 준 퇴직 축하 자리마다 '인생 2막 응원'과 '꽃길만 걸으라'라는 응원구호를 보고 왠지 울컥했지만,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내가 왜 이러지?' 하고 말하니

'아직 철이 덜 들어서'라고 아내가 말해줍니다. 한 달 후면 손주가 태어나 할아버지가 되는데도 아내의 말처럼 철이 덜 든 것 같습니다.

 

아르바이트라는 말이 생소하던

1987년 가을 어느 학원에서 우연히 만난 선배님의 소개로 이 직장에서 임시직으로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형님집에 자취하던 여자를 보게 되었습니다. 눈부시게 새하얀 피부를 가진 그녀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다가 놓칠세라 

26살에  서둘러 결혼했습니다.  지금은 너무 어린 나이지만, 그 당시는 결혼적령기였습니다.

결혼 후 회사 공채시험을 보고 정식으로 이곳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 꿈이었는데

일찍 결혼하는 바람에 삶의 방향이 '확' 바뀌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아름다운 추억이지만

삶의 굽이굽이 아픔도, 상처도, 애환도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아픔과 상처보다 보람이 더 컸기에 그만두지 않고 지금까지 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요즘 시대는 '경험의 시대'라고 합니다. 이런저런 경험을 많이 해야 하는데, 지금처럼 한 곳에서 직장생활을 오래 했다는 것이 새로운 변화에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 이 도시는 축복의 땅입니다. 

여러 가지로 부족한 시골 촌놈이 한 가정을 이룰 수 있게 해 주었고,

그나마 겨우 제 앞가림을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으며,

삼 남매를 낳아 성인으로 키울 수 있도록 해 준 곳이기 때문입니다.

 

나름 직장생활을 열심히 했다고 생각되지만 돌아보니 부족함과 아쉬움이 참 많이 남네요.

후배님들께 3가지만 당부드리겠습니다.

첫째,

건강을 잘 돌보시고,

둘째,

일할 때는 열정적으로 놀 때는 더 열정적으로

셋째,

고객의 편에서 되는 방향으로 업무를 수행하시라고 당부드립니다.

 

저는 놀 때는 느긋하지만, 업무 추진 시에는 급한 성격이라 속도를 내는 편이었습니다. 업무를 추진하는 과정에 저의 급함 때문에 혹시라도 상처를 입으신 분께서는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오랜 세월 회사원으로 살아온 삶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겠지만 몸에 익숙한 직장인의 옷을 벗고 새로운 길을 걸어보고자 합니다.

 

한번뿐인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저 자신에게 물어보며 가급적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라 주며 그동안 받았던 관심과 혜택을 틈틈이 나누며 이웃과 사회에 도움 주는 삶을 살 계획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랜 세월 정들었던 이곳을 떠나는 퇴직자들을 잊지 않고 따뜻한 마음을 담아 성대하게 환송해 주신 덕분에 마지막 떠나는 길이 참으로 뿌듯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어디에 있든 우리 회사를 늘 기억하고 응원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감사합니다.

 

어느 퇴직자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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